투자/정치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별 경제정책 분석, 김영삼 정부

Minhong224 2025. 2. 26.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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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2.26 - [분류 전체보기] -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별 경제정책 분석, 노태우 정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별 경제정책 분석, 노태우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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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입니다.

사실 IMF가 과연 김영삼 정부만의 책임인가? 이것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만, 원래 대통령이란 자리가 폭탄 돌리기를 하는 자리가 아닌가 싶습니다. 적어도 정책 방향만 읽어보면 크게 깜이 떨어지는 대통령은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경제개방 중에 하필 다 같이 넘어진 감도 없지 않아 있어보입니다.

김영삼 정부 (1993~1998)

통화 및 재정 정책: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취임 직후 금융실명제 실시(1993년 8월)로 금융거래 투명성을 확보하고 부동자금을 흡수하는 개혁을 단행했습니다. 통화정책은 이 개혁 이후 일시적인 자금경색을 완화하기 위해 다소 완화적으로 운용되었으나, 전반적으로는 물가안정을 위한 신중한 통화관리 기조가 유지되었습니다. 한편 정부는 국제화에 맞춰 1997년 한국은행법을 개정하여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높이고 물가안정 목표제 도입을 준비했습니다. 재정정책 측면에서 김영삼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여 임기 초기에는 균형재정을 유지했습니다. 1993~1994년에는 세입 호조로 재정흑자를 기록하기도 했고, 이에 따라 공공부분의 투자를 늘리기보다는 민간주도 성장을 유도했습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직전 부실 금융기관 정리에 재정자금 투입 압력이 생기고, 위기 발생 후에는 IMF 구제금융 조건에 따라 긴축 재정이 요구되었습니다. 결국 임기 말에는 경제위기 대응을 위해 예산을 조정하고 외채 상환에 대비하는 등 긴급 재정조치를 취했습니다. 요약하면 김영삼 정부는 초반에는 안정·균형재정, 후반에는 위기극복을 위한 긴축으로 통화·재정을 운용했습니다.


산업 정책: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Segyehwa)**를 국정지표로 내걸고, 산업정책 또한 개방과 경쟁에 방점을 두었습니다. 이전의 국가주도 산업육성 방식에서 벗어나 기업들의 자율과 창의를 강조했고, 정부는 규제 완화와 제도 개선을 통해 민간 부문의 활력을 높이고자 했습니다​theme.archives.go.kr. 예를 들어, 각종 규제완화조치로 기업 설립과 투자절차가 간소화되었고, 대기업의 신규 사업 진출에 대한 규제가 풀리기도 했습니다. 한편 **OECD 가입(1996)**을 목표로 자본시장 개방과 금융자유화를 가속하여, 1996년에는 외환거래 자유화 조치, 주식시장 외국인 지분한도 철폐 등 자본자유화를 대폭 시행했습니다. 이러한 급속한 금융개방은 부메랑이 되어 단기 외채 급증 등 외환위기 취약성을 높였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산업 구조조정 면에서는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수립(1993)하여 정보통신, 반도체, 자동차 등의 첨단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선정했습니다​theme.archives.go.kr. 정부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반도체클러스터 조성 등 인프라 투자를 일부 진행했으며, 기업들은 세계화 전략 하에 해외 M&A와 설비투자를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재벌 구조조정이나 금융개혁은 선제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한보철강 등 대기업 부도의 징후를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대외적으로는 WTO 출범(1995)에 대응하여 농산물 시장 개방과 자동차 등 공산품의 관세인하를 수용했고, *“세계화는 곧 생존”*이라는 구호 아래 기업들도 해외 시장 개척에 나섰습니다. 요컨대 김영삼 정부 산업정책은 개방화와 규제 완화로 특징지어지나, 외환·금융 부문 관리 부실로 1997년 위기의 빌미를 남겼습니다.

정책의 결과: 김영삼 정부 출범 초기에는 성공적인 국제화로 평가받았습니다. 1994년과 1995년에는 각각 9.2%, 8.9%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고​ko.wikipedia.org, 물가도 안정되어 “신경제” 구상이 순항하는 듯했습니다. OECD 가입을 1996년 12월에 달성하여 한국은 공식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습니다. 그러나 1996년부터 반도체 가격하락, 수출부진과 기업 부채누증으로 성장률이 7%→6%로 둔화되고, 한보 철강 파산(1997년 1월) 등 재벌 부도사태가 잇따랐습니다. 결국 1997년 하반기 태국 등 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급과 국내 취약성이 겹치며 11월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IMF로부터 긴급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98년 GDP가 -5.8% 역성장하고 실업률이 한때 7.5%까지 치솟는 등 경제충격이 발생했습니다. 김영삼 정부 기간(1993~1997)만 놓고 보면 평균 성장률 **7.98%**로 양호했으나​ko.wikipedia.org, 임기 말 위기로 성과가 퇴색되었습니다. 환율은 1997년 말 원화가치가 반토막 나는 급변을 겪었고, 수많은 기업과 금융기관이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에 들어갔습니다. 국가부채 역시 위기 수습을 위해 1997년 이전 GDP 대비 10% 미만에서, 이후 공적자금 투입으로 2000년경 30% 내외까지 급등하게 되었습니다. 김영삼 개인에게는 외환위기로 인해 경제관리 실패의 오명을 남겼지만, 한편으로 금융실명제 실시, OECD 가입, 무역규모 세계 11위 달성 등의 역사적 전환점을 이룬 시기이기도 합니다.

국제 비교: 김영삼 정부 시기의 한국 정책은 세계화의 흐름 속에 진행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미국은 신자유주의 기조 아래 금융규제를 완화하고 IT산업 붐을 누렸는데, 한국도 이에 발맞춰 금융자유화와 정보화 투자를 단행했습니다. 차이점은 미국은 기축통화국으로 외환위험이 적었지만 한국은 외환보유고 관리 소홀 등으로 위기에 취약했고, 결국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에 휩쓸렸습니다. 이 점에서 중국과 대비되는데, 중국은 당시 자본계정을 엄격히 통제하여 외환위기를 피해갔고 계속 8~9% 성장했습니다. 즉, 한국은 선제 개방으로 국제자본 이동의 충격을 받았고 중국은 점진 개방으로 방어에 성공한 사례로 비교됩니다. 일본은 90년대 내내 금융부실 문제를 겪었지만 미뤄두면서 장기불황에 빠졌고, 한국은 위기가 촉발되자 IMF 프로그램을 수용하며 단기 충격을 겪었습니다. 또한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신흥국들도 1997년 한국과 유사한 위기에 직면했는데, 이는 90년대 전반 이들 국가가 모두 급격한 자본시장 개방과 부채누증을 겪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반면 대만은 비교적 안정적 금융관리로 위기를 피했고, 싱가포르홍콩은 외환보유액이 많아 타격이 적었습니다. 이러한 국제 비교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이 장기적 제도 선진화에는 기여했지만, 단기적 위험 관리에서는 미흡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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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별 경제정책 분석, 김대중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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